의병활동과 한국전쟁

동학과 의병활동

동학의 초창기이던 1863년, 전국에 16개 접이 있을 때 단양지역이 포함되었으며 당시 접주는 민사엽이었다. 또한 해월 최시형은 남면 샘골(대강면 남천리) 여규덕(몽양 여운형의 큰할아버지)의 집에서 1881년 용담유사를 간행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동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 불의에 대한 의분을 누리지 못하고 한말 의병활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지역이 바로 우리 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병활동에 참여했으며, 전투 또한 단양의 곳곳에서 일어났다. 대표적인 인물로 영춘 남천 출신의 의병장 김상태가 있다.

영춘 남천 출신의 의병장 김상태, 해월 최시형

6.25 한국전쟁

6.25일 새벽, 기습남침으로 38선을 넘은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10일 후인 7월 5일 제천지역에 당도하였다. 이로부터 3일 후인 7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유명한 단양-죽령 전투가 펼쳐졌다. 2003년 ~ 2004년 유해발굴 사업으로 실금산과 마조리, 어의곡리 일대에서 42구의 유해와 686점의 유품이 발굴됨으로 당시의 공방이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가히 짐작케 한다. 또한 1951년 1월 20일, 소백산맥을 따라서 북한군과 중공군이 안동까지 진출하던 1.4 후퇴의 급박한 상황 하에서 미군기 4대가 영춘면 상2리의 곡계굴을 폭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400여 명의 피난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리고 상2리의 강 건너편 동대리 넘어가는 고개에는 13인의 용사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6.25 당시 의풍·동대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북한군 패잔병의 전투에서 전사한 경찰묘역이다. 본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후배 경찰이 한데 모아 성역화한 것으로 우리 지역 6.25 참상의 한 단면이 되었다.

마조리 일대 국군 유해발굴, 13인의 용사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