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천‧단양 지역사회가 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때 아닌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제천중(30회)과 제천고(32회)를 졸업한 제천사람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올린다.
제천‧단양 지역사회가 통합 논의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년 7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자극할만한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일단 ‘던지고 보는 구태’라는 우려도 있다.
제천과 단양은 청주‧청원, 마산·창원·진해 등 이미 통합을 이룬 여타 시‧군과 달리, 도‧농 지역의 불균형 문제 등 선결과제가 많고, 통합에 따른 득실 등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지방행정체계의 개편문제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을 통해 지방자치가 도입된 이래 일부 통합지역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52년 제1차 지방선거를 통해 기초 및 광역의원을 선출하면서 지방자치가 시작됐지만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시행되면서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자치단체장이 임명제로 전환된 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되기까지 30년간 중단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1988년 ‘지방자치법’ 전문개정에 이어 1991년 기초 및 광역의회 의원을 선출하고, 1995년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함으로써 본격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자치단체별로 적게는 2만~3만 명에서 많게는 100만 명이 훌쩍 넘는 인구, 기초·광역(자치2계층)+행정구(區)와 읍‧면‧동(행정2계층)으로 계층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지난 수십 년 간 지방행정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개편에 따른 효율성 문제와 광역자치단체와의 자치계층 조정문제,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성 문제가 충돌하면서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의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자율적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필요에 의해 하향식‧타율적으로 추진되면서 많은 진통을 야기해 왔다.
기초자치단체의 통합문제는 농촌지역의 복지형평성 문제, 특정지역의 불균형 발전 등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혼재돼 있어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와 군을 통합하면 군 지역은 발전의 대상에서 소외되고 혐오시설만 들어온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도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도로 여건이 나아지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생활권이 인접해 있는 만큼 통합해야 좋다는 논거와 달리,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정치‧경제적 상황이 다른 것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만약, 통합을 추진한다 해도 지명을 현행 제천시로 그대로 할지, 단양시로 할지 주민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천시로 한다면 단양군의 각종 기관‧단체‧기업의 간판 등 옥외광고물과 상징물(CI), 단양시로 한다면 제천시의 입간판, 도로표지 등 천문학적 예산이 수반되는 간판과 CI 교체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숙제다.
따라서 통합이전과 이후의 세입‧세출 등 재정현황을 분석해 통합 이전과 이후의 경제적 부담 변화 추이를 소상히 따져보고, 주민들의 행‧재정적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주민들이 갖는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주도면밀한 조사‧연구 및 데이터 산출이 선행돼야 한다.
21세기 들어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정치권, 학계, 자치단체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껏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행정구역의 통합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꽃인 지방자치의 본질은 규모가 작을수록 그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데, 행정의 효율성과 규모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명분만 앞세워 행정구역의 광역화만을 지향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행정구역 개편은 광역과 기초를 연계해 큰 틀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제천‧단양에 국한에서 논의하는 것은 자칫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하나로 통합하는 초광역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인구 12만 8897명의 제천시와 2만 7427명(2024년 10월 현재)의 단양군의 통합을 논의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 통합 논의는 광역자치단체의 통합을 포함한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국회의원의 지방의원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관련 법령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방자치제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소규모 시‧군의 통합을 졸속으로 추진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따져봐야 한다.
제천‧단양 통합 논의가 자칫 효용성의 가치만 지나치게 과잉평가하고, 당초 통합의 의도와 다르게 주민들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도심지역과 달리 외곽지역의 개발동력이 떨어져 외려 지역 내 불균형을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제천‧단양의 통합 논의가 내년 지방선거 이슈 선점을 위한 재료로 활용해서는 안 되며, 특정인의 전략적 계산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논의가 무르익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천‧단양의 통합논의는 시기상조이며, 서두른다고 무조건 성사되는 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통합으로 인한 부작용과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