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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영춘면 영춘의 부채형극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7일 0시 0분 0초
조회
4,010
영춘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영토였다가 통일신라로 이어지고 고려때는 원주목사가 관할 영월군의 읍소재지였고 조선 초기에 충청도로 예속되면서 충주목사가 관할하는 현청이 있었다. 영춘은 글자 그대로 봄이 길고 따뜻한 곳이다. 영춘 기행문에는 하리나루터 맑은물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고 건너편 넓은 모래 백사장에는 바지저고리 입은 아이가 뛰어놀고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어 터널을 이루어 도원 동문이라 했다. 복숭아꽃이 핀 고리뜰에는 보리가 힘차게 자라고 강변 풀밭에는 송아지가 풀을뜯고 염소가 한가로이 노는 풍요로운 고장이라 했다. 그러나 영춘에는 불이 자주 일어났고 불을 끄자면 샘물이 없어 강까지 와서 물을 길러다 불을 끄다보면 집이 다 타없어지는 것이 봄과 겨울에 수없이 일어나 주민들은 대책을 논의했으나 대책이 없어 수십년을 지내던차 어느 봄날 화산에 진달래 만발한 마을에 도원동문을 지나면서

"살기는 좋으나 화기가 가득하여 화재가 빈번히 일어나서 주민들이 상당히 불안하게 살고 있구만" 하면서 마을어구를 지나자 듣고있던 노인들이 어찌 그렇게 마을의 내력을 잘 아시느냐고 하였더니 금강산서 수도 하다가 지리산을 잠깐 들리러 가는 길인데 지나고 보니 마을 형상이 부채형극이야

그리고 마을이름이 영춘이라 봄날의 따뜻한 기운으로 불이 자주 날수 밖에 없는 것이 상생상극 음향오행설의 원리인 것을 사람의 힘으로는 막기 함들 것이야! 라고 말하며 자꾸걸어 나루터에 와서 배가 저쪽 건너 있어서 쉬는참에 대책을 논의하고 처방을 하여 달라고 하자 그럼 내가 시키는데로 해 볼것이냐고 물음에 모두가 한다고 함께 대답하자 부채형극인 영춘 상리와 하리에 각각 우물을 하나씩 파서 부채에 바람구멍을 내어 놓으면 부채로 부쳐도 불이 번지지 아니하는 원리이니 그리해 보라고 이야기 하자 "네, 그리 해 보겠습니다." 대답하고서 잘가라고 인사를 하고나니 도승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다.

주민들은 마을회의를 거쳐 커다란 우물을 파고나니 물이 고이게 되고 불이나면 이것을 방화수로 이용하여 소재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을 조속히 진화하여 화재가 없이 잘살게 되었다.

현재도 영춘중학교 앞과 하리 은행나무 옆에 연못이 있는데 소방차가 생기고 소화전이 설치됨에 따라 자꾸 연못이 잠식되어 아주적은 연못으로 현존하고 있고 하리의 연못은 물이 없어진지가 오래이다.

부채형극인 영춘의 풍수설로 인하여 처음에는 부채끝인 마을 끝 강변쪽으로 느름나무를 많이 심어 부채가 무겁도록 하였다. 그러나 72년 수해로 더욱 무겁게 튼튼한 제방을 쌓아서 동그란 부채를 편 가장자리를 연상하게 하며 산에는 마을의 둥근모양이 상.하리에 적어저 북벽과 느릅실 골짜기를 경계하여 산으로 올라가 삼각형 부채의 못 박힌 곳을 이루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과 자연의 신비함을 말해주는 곳이기도 하고 강물이 S자로 흘러 혼탁한 공기와 먼지를 강물이 다 중화시켜 주어 산, 물, 바람, 인심이 좋아서 사의루가 있어 지역의 아늑함과 살기좋은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 소재지 : 영춘면 상.하리
- 년 대 : 조선 초기
- 제보자 : 영춘면 윤수경 / 197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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