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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영춘면 전해 내려오는 십승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7일 0시 0분 0초
조회
4,676
조선 22대왕이신 정조대왕과 규장각 학사 운항임과의 학문이 깊어서 두분이 서로가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국정과 정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한 말이 지금도 전해지는 4자 단구가 있다. 그때부터 경기도는 경중미인, 충청도는 청풍명월, 강원도민은 암하고불, 함경도는 이전투구, 평안도는 맹호출림, 황해도민은 석전경우, 전라도는 풍정세유, 경상도민은 설중고독 이란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는 조선시대에 도민을 평가한 말이 되어 조정에서 계속 이 말을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우리 도는 청풍명월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 중에서 단양은 더욱더 청풍명월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단양에 많은 풍수지리설에 명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름난 이대 천자지지 비봉귀소형 매화낙지혈 금계모란형 균어종옹형 옥녀직금형 오녀산발형이 있지만 그 옛날 고려 때 정감록 감결에 의하면 십승지가 있는데 이 십승지는 이심과 이연 형제가 제갈 공명 보다 더 용하다는 촉나라 도사 정감을 모셔와 조선8도 강산을 유람하면서 이심의 자손이 세울 조선왕조의 운명과 흥망을 예언한 3인의 대화형식으로 된 그 천자에 불과한 짧은 비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금서로 판명되어 조선 조정에서 단속하고 처형했던 것이다.

그 십승지중 ① 풍기예천 금계바위 ② 안동화곡 ③ 개령용궁 ④ 가야 ⑤ 단춘 ⑥ 공주마곡 ⑦진천목천 ⑧ 봉화 ⑨ 운동 ⑩ 태백이다. 60여개의 감결비서중 ⑤번인 단춘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그만치 살기 좋고 소박함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말은 이십년 병화(싸움)에도 구인종어 양백하고 구년가음에도 구곡종어 삼풍하니 단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단양과 영춘 지방이기 때문이다. 양백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의 중앙을 말하며 3풍지간은 옛날 의풍이 3풍이기 때문이다.

즉, 산고미경 토질비옥 인신온후였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아온 정감록파들이 소백산맥을 지붕 삼아 평안도 황해도 사람들이 70년대까지 화전을 일구어 먹고살았다. 그것을 현대에 와서 동학난 때와 의병전투 6.25전투에서 십승지임을 입증해준다. 교주 최시형이 동학의 교주로서 의풍장건지에 처가를 두고 살았고 가산에서 3년간 머슴을 살면서 동학을 하였고 한일합방때에는 십승지를 중심으로 의병의 항쟁이 무척이나 심했고 십승지에서 일 정규군과 교전한 것이 소백산 허리에 무수고있고 의병장 김상태장군 김용재의사 김두배의사등이 십승지를 이용하여 항쟁했다.

이 십승지는 현대 과학의 발달로 점점 쇠퇴해가고 그 맥을 잃어가지만 이 십승지와 비결은 이두 음어 파자로 하여 얼마간을 생각해야 나오는 글자들이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곳이 십승지웅 우리지역은 의풍 남천 천동 가산 벌천 죽령지역이다.

- 소재지 : 단양군 일원
- 년 대 : 고려시대
- 제공자 : 영춘면 의풍리 불당골 엄원섭
- 제보자 : 영춘면 윤수경 / 197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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