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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영춘면 용진의 용나루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7일 0시 0분 0초
조회
4,041
영춘의 용진나루는 뱃길문화의 기착지였고 또 출발지역이었고 삼대 염로의 하나였던 포구이기도 하다 일정때에는 만주의 콩깻묵을 배급받기 위하여 경상, 충청, 강원의 3도의 사람이 몰리기도 했고 1950년대는 소백산의 원시림이 벌채되어 서울로 가면서 전국의 목상과 땟사공이 모이기도 했고 100년전에는 의병들이 이곳 여울을 도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을 용나루라 하는데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마을앞을 커다란 용이 꿈틀거리며 용탄의 쏘로 올라가는 형극을 따서 용자를 썼고 물과 배가 있어 나루진자를 써서 마을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옛부터 단양의 1병두 2느티 3덕천이란 유행어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이야기는 수운 교통이 발달할 때 출발지역의 잇점을 표현한 말이다.

물과 앞 강물 절벽이 용 한마리가 오사리 용탄을 향하여 꼬리를 흔들며 올라가는 형상이다. 마을이 용의 몸통과 같은 부분을 중심으로 살고 꼬리는 느티에 머리는 오사리에 있다. 그러나 이 꿈틀거리는 부분에 혈을 박아서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하방소에 머물고 있고 용탄에 가서 잠겨 있어야 하고 올라갈수록 점점 물이 얕아지는 현상이 나타나 용이 승천하지 못했다 한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이 병두였으나 용자와 뱃나루터 진 자를 써서 용나루라 이름하여 용진 앞 강물에는 60년대만 하여 정월 보름과 가을 10월 달에는 용왕제를 지내던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땟사공들도 밤중에 용의 형상을 보고서 땟목위에서 무사 귀환을 비는 용왕제가 하루저녁에도 몇건씩 있었다.

요즈음은 강물이 점점 줄어서 용의 먹는 물까지 적어졌고 상류의 혼탁한 물이 내려오고 도로개설 공사로 돌이 날아와 용의 머리를 두드리고 눈을 때려 상처난 용 때문에 마을의 불행한 일이 많이 생겨나서 큰일이며 또 북벽지구 개발을 용의 등으로 개발하여 마을의 운세는 점점 쇠퇴해 질것을 염려하나 땜을 막아주어 깊은 물과 맑은 물을 제공해 준다면 마을의 운세가 좋아질 것이다. 그것도 한 마을만 잘되는 것이 아니고 3개마을 용진 느티 오사가 잘 된다고 이야기 했고 옛부터 3개 마을은 마을일도 같이 했고 행정을 한마을이 본적이 있기도 하다. 용의 형태의 용의 상처를 치료하고 용의 놀자리 기거할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촌노들은 생각하고 있다.

- 소재지 : 영춘면 용진리
- 년 대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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