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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영춘면 대원군과 화장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3,744
화장암은 태화산의 허리에 있다. 태백산의 낙맥으로 해발 1027m의 태화산을 낙내로 남한강을 건너지 못하여 소백산의 형제봉, 신성봉을 바라보고 있다. 태화산의 화장암은 영험했고 1960년대까지만해도 강원, 충북 500여 신도가 모일때도 있었다. 옛날에는 큰절이었으나 불당이 허물어져 없어지자 김계일이 주동이 되고 조종영, 조종현의 협조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였으나 생각한 뜻대로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공사를 중단하고 김계일은 영춘군수를 찾아가 부탁하였으나 군 재정이 어렵고 낼 돈이 없다하였고 월권이지만 나의 권하능로는 나의 임기중 공물을 차용하고 이임할 때 상환하는 조건으로 국고금(당시는 현물)을 차용해 줄 수는 있다고 하자 김계일과 영춘군수간의 국고금 1,000냥 차용증서 작성으로 차용이 이루어져 불사를 완료하고 군수는 떠나고 신임군수 사무인계인수에 1,000냥의 차용이 있어 관리를 불러 문초하고 김계일을 소환 심문하였으나 돈이 없어 갚지 아니하자 국고 금반제, 불능 및 사기죄를 적용하여 현직군수가 고발하여 서울 압송하고 말았다. 대원군이 섭정때라 인재등용 묘안을 생각하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방에 들어와 하는 말이 "나는 충청도 영춘 화장암에 사는 산신령이요"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그대를 찾아왔소" 며칠후 영춘사는 김계일이란 선비가 국고금 반제불능 죄목으로 이곳에 올 것이요, 그대에게 국고금 천냥을 하사하여 주고 "그 절 이름을 화장암이라 현판을 내리면 국운이 융성할 것이요. 그대의 아들(고종 황제)도 장수할 것이요. 그러니 부탁을 소홀히 하지 말고 잘 처리 하시오" "부처님의 당부 말씀이요!"하고는 밖으로 나가는데 대낮같이 밝고 오색이 영롱한 흰구름 한줄기를 잡아타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대원군이 잠을 깨어보니 꿈이었다. 대원군도 평생에 꿈은 여러번 꾸어보았지만 처음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충청도 영춘 화장암"이라 메모한 뒤 일어나니 마음이 상쾌했다.

다음날 꿈이 이상하여 수감자 명단을 가져오라하여 읽어보니 김계일이 있어 도승지를 불러 물어보니 어제의 꿈과 일치하자 대원군이 다시 심문하기를 국고금 천냥씩이나 가로 채었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하니 "예 그러하옵니다." "천냥은 어디에 썼는가" "사찰을 짓는데 썼습니다."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국고금을 가로챈 것이 아니구나 시주한다는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으니 그 돈을 갚지 못한 것 이구나"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렸다." "예 감히 어디라고 거짓을 고하리까" "허허"

첫째, 시골선비가 국고금을 천냥씩이나 가로챘다니 너의 뱃장과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고 너를 부른 것이고,

둘째, 시화풍년을 빈다니 그것이 나의 뜻과 같고 어찌 그것이 요즈음 민초들의 마음이겠느냐,

셋째, 같이 협조한다는 사람들이 배신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진 선비정신에 내 마음이 흡족하다.

넷째, 고을 백성이 자자손손 기복할 수 있는 절을 지었으니 큰일을 하였노라. 너를 죄인으로 다스리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내일 다시 입궐토록 하라"하여 다음날 입궐하니 가선대부오위장 김계일 이란 교지를 받고 금의 환향한 후 군수가 찾아와 직령이요"하여 나가니 하사한 족자에 대원군 친필로된 대원군의 화장암의 친필현판 한 장, 청기와 3매, 법복 한벌, 고종황제 초상화 한점이 있었다. 김계일은 성상의 만수무강과 국태민안을 빌었다고 한다. 그 원문은 '94 화제로 인하여 타버리고 없고 대원군 현판친필도 타버렸다. 아쉬움이 남는다.

- 소재지 : 영춘면 상2리 203번지
- 년 대 : 조선말기(1897)
- 제보자 : 영춘면 오사리 이재흥(64)
- 제보자 : 영춘면 윤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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