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 메뉴


대강면

대강면 죽령 산신당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4,008

대강면 용부원리 사람들은 아직도 죽령산신당을 극진히 모시고 있고 생활화 되어있다. 그 이유는 일본징용 가거나 대동아 전쟁, 6. 25사변때 꼭 군에 입대할 때는 전 가족이 와서 참배하고 군에 입대하여 여태까지 한사람도 마을사람이 전사하거나 다친 사람이 없다고 황외용(57)씨가 이야기하고 김병환(67)씨는 여기서 나서 컸고 나도 군인을 갔다 왔지만 전혀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은 다자구 할머니가 마을을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병환씨가 27살 때(40년전), "큰 산불이 일어났지요. 그때에 산이 다 타버렸지요. 불길이 얼마나 센지 마을이 다 타는 줄 알았지요. 그때 이장님이 급한 나머지 인력으로 불을 끄는 것보다도 다자구 할머니의 영험을 빌려보자구 술 한 병을 들고서 산신당으로 달려가 미련한 인간이 제 할 구실을 못하고 불을 내어서 큰일 났으니 제발 불길을 잡아주시고 우리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산신당도 남게 해 달라고 빌었지요." 그랬더니 불길이 비켜가 도로에 닿아서 꺼졌다한다. 현대의 과학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곳은 다 탔어도 산신당 근처는 멀쩡하여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영험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고 황외용(57)씨가 강변하고 김성락(73)씨는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김성락(73)씨는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자면 햇곡을 하는 것이 예법이거든요." 제삿날을 받으면 정성 드려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 지내는 집은 부정한 자 출입을 삼가고 동리 사람들도 부정한 사람은 가지 아니했다. "미처 여물지 아니한 벼나 조를 털어서 말리려고 집에서 말리면 닭도 쫓아야 하고 개가 못 밟게 하자면 사람이 있어야 되니까 죽령산신당 마당에 널어서 말리는데 참새들이 날아와서 제사지낼 때 쓰려고 널어 말리는 곡식을 먹고 참새가 수없이 죽었다우. 이 말은 우리 선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야." 이 말을 용부원3리 사람은 모두가 들은 바였다고 한다. 다른 산신각 산신당은 호랑이 남자가 신이지만 이곳은 여신인 다자구 할머니라서 남자보다 포용력이 많고 은혜를 주는 도가 크다고 한다.

죽령고개는 예로부터 서울과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였고 관방이었다. 이 고갯길은 험하고도 길었고 소백산을 넘는지라 수목이 꽉차있어 낮에도 힘든 길 아흔 아홉 구비 내리막길 30리 오르막길 30리였다. 처음에는 밤에만 나타나던 도둑이 낮에도 나타나 행인을 괴롭히고 관가의 행차도 어렵게 하여 관가의 군졸을 풀어 도둑을 잡으려했으나 도둑들이 잘 익힌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산 도둑 잡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단양군에서 골치를 앓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타나 도둑 잡기를 자청하여 연유를 알아본 즉 도둑에게 재산을 다 빼앗겨 못살게 되었다 하며 도둑 잡는데 묘안을 이야기한다.

할머니가 도둑 소굴에 들어가서 도둑들이 모두 자고 있으면 "다자구야" 도둑이 안자고 있으면 "들(덜)자구야"를 암호로 하여 관군과 약속하고 관군은 미리 매복하고 할머니가 도둑소굴에 들어가서 매일 "다자구야, 들자구야"를 노래 삼아 부른다. 보름째 되던 날 도둑두목의 생일날이라 모두가 밀주에 취하여 다자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와서 늘 부르던 "다자구야, 다자구야"를 외치자 관군들이 도둑 떼를 일망타진했다.

단양군의 보고에 의하여 정부에서 사당을 짓도록 명하여 서울에서 연을 날려 떨어진 곳이 현재 대강면 당동리였는데 소말을 먹이던 곳이라 불결하여 다음 연을 띄워서 떨어진 곳이 현 위치이다. 그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곳 사당에 위패를 모시고 정부에서 춘추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단양, 영춘, 풍기, 청풍, 제천군수가 제사를 지내서 모두가 국사당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부르고 있고 다자구 할머니 산신당 또는 죽령 산신당이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점점 작아져서 정부→군→면→마을→반으로 적어지다가 단양문화원에서 부활하여 면단위 행사로 커지고 있다.

죽령산신당 자리를 잡을 때에 서울에서 연을 띄워서 떨어진 자리가 당동리로서 산신자리였는데 연이 앉은자리가 당시는 개똥밭이라서 주민들과 부임관이 보고서 부적당하다고 상소하여 다시 띄워서 연이 앉은자리가 현위치이다. 죽령산신당에 제기나, 제물을 가정집으로 가져간 사람은 망하거나 벌을 받아서 죽은 자가 있다.(이화종 대강용부원거주, 심상학 충주거주)


- 소재지 : 대강면 용부원리 3리
- 제공자 : 대강면 용부원3리 김성락(73)
- 제보자 : 단양군청 윤수경(89.7.3)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