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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면

단성면 하룻밤 궁궐 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4,339

도락산성 아래 도락산을 중심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접경 마을 벌천리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고려가 망할 무렵 도락산성 절골 현 벌천리 궁기둥중 내궁기 벌천리 32번지 김동진 집 절골에서 짚신을 만들어서 팔아가며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있었다. 산아래 마을사람 (현 벌천리 외궁기둥) 들은 이 할아버지를 어느 ××노인이라 부르지 않고 이인이라 하였다. 마음이 내키는 사람이 나 기분이 좋을 때에 부탁하면 명당자리나 양택인 집자리를 잡아주기도 하고 살아갔다.
욕심있거나 잘 살려하지도 아니하고 절대로 남과 다투거나 성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민왕이 어지러운 정국에서 한때 난을 피하여 平民복장으로 현 도락산 근처를 지나가게 되였으나 날이 저물어 자고 가야할 형편에 이르러 짚신 할아버지 집을 찾아서 잠시 쉬어 갈 것을 청하였다. 이에 짚신 할아버지는 공손히 안내하며 안으로 청하여 안방 아랫목에 앉히고 박서방네 집에 가서 쌀 한말만 꾸어 오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5Km 쯤 떨어진 朴서방네 집을 찾았으나 귀한 쌀 한말을 가난뱅이 짚신 할머니 집에 꾸어주질 않았다.

할머니는 얼마 후 거절당하고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거절당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섭섭함을 토로하자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 허허. 내가 그 사람 벼 50섬할 명당양택을 잡아주었는데 쌀 한말 꾸어 달라는데 그것마저 거절하는 구만 " 그래서 "그 사람 그릇이 그것밖에 안돼서 벼 50석 밖에 자리가 안 나더라 " 하니 왕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렇게 풍수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하필 짚신만 삼고 이 벽촌에 살고 있소"하고 빈정대며 이야기하자 짚신 할아버지는 "내가 사는 이 집터는 돈 없고 권세 없고 알아주지 아니하는 집터이지만 이 집터는 궁궐이 될 터입니다. 오늘 임금님께서 반드시 하루를 우리 집에서 유하고 가실 테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왕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 했더니 도락산 정상에 모여있는 빛과 대왕이 그 인자하신 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결국 왕이 이 집에 하룻밤을 묵었으니 짚신 할아버지의 풍수지리가 맞아 떨어졌고 초라하던 집이 행궁이 된 셈이다. 그후 할아버지는 아무리 없어도 왕의 마음으로 한 세상을 살았다 한다. 그래서 이곳을 예전에는 절골이라 했는데 공민왕이 하루를 유하고 간 후 부터는 궁기둥 내궁기, 외궁기가 되었다.

공민왕이 옥새를 대추나무에 걸어두고 세수를 하고서 현 김오달 집 벌천리 112번지 집으로 걸어 들어가니 이인이 " 옥새가 개조하니 군왕이 왕림했다" 고 소리치면서 새자리를 깔고서 앉으라고 권하자 왕이 상당히 기특하게 여기고 이유를 물은즉 언제고 왕이 왕림하실 집인데 어찌 이보다 더 좋은 터가 있겠습니까. 안으로 모시게 하면서 부인을 시켜서 윗마을 박씨 댁에 가서 쌀을 꾸어 오라고 하니까 어제도 꾸어왔는데 또 쌀을 꾸어 주겠느냐 또 값을 길도 막막한 우리에게 당신마음같이 너그럽게 꾸어주질 아니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까 "아 그 사람들이 누구 덕에 먹고사는데" 하니까 부인이 당신은 누구 덕에 먹고사나요 물으니


- 소재지 : 단성면 벌천리 궁기둥
- 년 대 : 고려공민왕
- 제공자 : 단성면 벌천리 안상우
- 제보자 : 윤수경('93.1.6.) 단성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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