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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리

연혁

  • 고종 32년(1895) 영춘현이 군으로 승격됨에 따라 영춘군(永春郡) 차의곡면(車衣谷面)에 속했다.
  •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은동(魚隱洞), 장선리(長仙理), 감천(甘川)을 병합하여 사지원이라 했다.
  • 차의곡면이 폐지됨에 따라 영춘면에 편입되었고, 1970년 사지원1, 2리로 분구되었다.

특성

  • 고려 때 사기(沙器)를 구웠으므로 사기장골이라 하였다.
  • 조선시대 때 오사역(吾賜驛)에 딸린 원터가 있었으므로 사지원(斜只院), 보수원(保壽院), 보송원 (保松院) 또는 사원(斜源)이라 하였다.

산천 및 지명유래

  • 태조탑 : 태쟁이 동쪽 100m 거리에 있는 탑. 이조 태조(太祖)가 들렀던 것을 기념하여 세움.
  • 합수거리 : 군간머리 서쪽에 있는 길. 사이곡천과 한강이 합수되는 곳임.
  • 군간무리 : 궁간우. 사지원 동남쪽에 있는 마을. 고구려 온달 장군이 온달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파수병을 배치하였던 곳이라 함.
  • 단물내기 : 감천. 군간무리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영춘현감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을 마시고 물맛이 달다 하였다 함.
  • 월계수 : 일명 올케소라 하며 옛날 시누이와 올케가 산에 뽕따러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던 곳.
  • 백장골 : 고구려 때 백 명의 장졸과 장수가 지키던 곳으로 사지원(보수원)으로오는 길목이며 군간 초소에서 500m 거리에 있다. 웃공동.
  • 보수원터 : 고구려 때 온달산성에서 전투하다 부상한 병사를 치료하던 곳, 지금의 야전병원.
  • 복고개 : 사지원2리 어은동으로 가는 소롯길. 도보로 가는 가장 가까운 북쪽길.
    북으로 가는 길이라 하여 이름 붙여짐.
  • 병소 : 두 가지 설 중 하나는 초막골에 말을 뜯기는 병사가 목욕을 하였다 해서 병소라 하고 다른하나는 온달장군이 죽자 병사들이 절벽에서 소에 몸을던져 자살하였다고 해서 병소라 함.
  • 화산 : 태백산맥의 낙맥으로 태화산(1027.4m)의 뒤쪽을 화산이라 함.
  • 태쟁이개울 : 태장이묘 앞의 하천으로 붕어소, 가마소 등 명소가 있음.
  • 성황당터 : 어은동 중간 지점에 샘물이 나는 근처에 성황당이 있어 정월 대보름에 제를 지냄.
  • 흥교절터샘물 : 강원도와 충청도 경계천으로 사지원천의 원류.
  • 흥교 : 하원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흥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천불을 맞아 전소되었다고 함.
  • 그물맥이 : 마을이 그물을 쳐 놓은 형상으로 사람이 죽으면 모두가 그물맥이에 묘를 쓴다 함.
    고기가 그물에 걸려 죽는 것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그물맥이에 묻는다.
  • 작자골 : 하원 학교 관사 터로 옛날 도깨비가 밤에 나타나 솥뚜껑을 솥 안에 넣어서 아침에 밥을 못하였으나, 정성으로 빌면 솥뚜껑이 나왔다.
  • 복고개 : 어은동에서 사지원1리 양짓말로 통하는 지름길이다.
  • 비마루 : 비마, 단물내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예전에 비마라사 절이 있었다.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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