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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방리

연혁

  • 1912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화면(鳳化面) 관할이었다.
  • 1917년 봉화면(鳳化面)이 단양면(丹陽面)으로 개명됨에 따라 단양면 관할이었다.
  • 1979년 단양면(丹陽面)의 읍(邑)승격으로 단양읍(丹陽邑)에 편입되었다.
  • 1985년 충주(忠州)댐 완공으로 읍소재지가 이전함에 따라 구단양 출장소 소속이 되었다가
  • 1992년 단성면(丹城面) 승격으로 단성면(丹城面) 관할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특성

  • 본래 단양군 읍내면 지역으로 읍내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방(下坊)이라 하였다.

산천 및 지명유래

  • 당재고개 : 자새제. 장터에서 현천(玄川)리 웃터 내로 가는 고개.
  • 성재 : 성티(城峙). 자새. 재깐 동쪽에 있는 산성이 있는 봉우리.
    그 모양이 나룻배처럼 되어 있고 산성인 적성산성(赤城山城)은 퇴락하여 그 흔적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국보 제 198호인 신라적성비(新羅赤城碑)가 발견되었다.
  • 가래산 모퉁이 : 재깐 마을의 다른 이름.
  • 당재 : 하방리 동쪽에 있는 마을. 서낭당이 있다.
  • 새기실 : 하방리 마을 앞에 있던 들판.
  • 성재들 : 성재 위쪽에 있는 들판
  • 소전거리 : 하방리 중심에 있던 마을. 소시장(牛市場)이 섰다.
  • 옥터거리 : 단양 연못 옆에 있던 길. 전에 옥(獄)이 있었음
  • 재깐 : 소전거리 북쪽에 있던 마을. 옛날 큰 화재가 일어나 많은 집들이 타버렸다고 함.
  • 복도별업(復道別業) : 복도소 아래 단양천변에 있던 바위.
    퇴계 선생이「複道別業」이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충주(忠州)댐 완공으로 수몰이주기념관 마당에 옮겨져 있다.
  • 탁오대(濯吾臺) : 단양천변 우화교 상류에 있던 바위.
    퇴계 선생이「濯吾臺」라고 글씨를 새겼는데 현재 수몰이주기념관 마당에 보관되어 있다.
  • 객사터(客舍地) : 관리의 영접·유숙(留宿)을 목적으로 지어졌던 관아의 건물 터.
  • 남천(南川) : 단양천의 다른 이름. 경북 예천군 작성산(鵲城山)에서 발원.
  • 단양연못 : 화재를 막기 위해 소금무지산의 소금단지와 함께 읍내 중앙에 파놓았던 연못.
  • 봉서정터(鳳棲亭地) : 이요루(二樂樓) 남쪽에 있던 정자터.
    선조 35년(1602)단양군수 이준이 창건 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단양 관아의 대표적인 누정(樓亭)이었다.
  • 상휘루터(翔輝樓址) : 단양관아의 정문으로 정조 18년(1794) 군수 조경진이 건립한 후 수차 중수.
    1962년 군수 정범구가 남한강변으로 옮겨 세웠으나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 수몰이주기념관(水沒移住記念館) : 충혼탑 아래에 위치(位置).
  • 신라적성비(新羅赤城碑) : 적성산성 안에서 1978년 발견된 신라 비석. 국보198호.
  • 아사터(衙舍地) : 객사터 서쪽에 있던 아사터. 옛 경찰서장 관사터임.
  • 이요루터(二樂樓址) : 객사의 서쪽 단양천변에 있었던 누각터.
    세종 26년(1444) 단양군수 이달이 세웠는데 8간(間)의 2층 누각으로 안평대군이 쓴 제액(題額)이 남아 있었다.
  • 적성산성(赤城山城) : 성재산의 반월형 석성. 둘레 923m. 사적 265호.
    붕괴되고 일부만 잔존했으나 복원 중에 있음. 신라의 축성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 국보 198호인 신라적성비가 발견된 곳.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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