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 메뉴


하리

연곡리

  • 고려시대는 원주목 영월군의 속현이었다.
  • 고종 32년(1895) 영춘군으로 승격되어 영춘군(永春郡)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新垈), 방대(房垈), 유곡(楡谷), 율수동(栗蓚洞)을 병합하여 하리(下里)가 되었다.
  • 1985년 하1리와 하2리로 분구되었다.

특성

  • 조선시대 수로 발달로 사창(社倉)이 있어 남진으로 유명했다.
  • 영춘군(永春郡)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으로 영춘 읍내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말 또는 하동(下洞)이라 하였다.

산천 및 지명유래

  • 범봉 : 느릅실 뒤쪽에 있는 봉우리. 하리 봉수대가 있던 곳. 해발 530m.
  • 방제 : 용진·동대가 보이는 산 정상으로, 전략용어로 방재 또는 밤재라고 함.
  • 느릅실 샘 : 느릅실 느릅나무 아래에 있던 샘물.
  • 영춘장터 : 하리나루터 위 하수구 아래 백사장 터에서 영춘의 장이 섰음.
  • 한뱃나루터 : 도선장으로 옛날 주막이 있었고 사공이 상주하였던 곳. 현재 하리 교량 부근.
  • 도원동문(桃源洞門) : 하리 제방 안쪽 마을이다.
    봄이면 푸른 잔디에 소와 양이 풀을 뜯어 한가로운 가운데 굴뚝에 연기 가늘게 나고 집집마다 심은 복숭아 꽃과 살구꽃이 피어서 꽃동산을 이루는 마을로 서호거사(西湖居士) 이홍규(李弘圭)가 각자한데서 붙여진 이름. 하리나루 건너편, 우측 수면에서 15m 지점에 각자가 있음.
  • 토끼봉 : 돌이 들겨 놓인 것이 토끼 같다 해서 토끼봉이라 함.
    토끼봉 옆 2km지점에는 옛날 기우제를 지냈던 돌로 쌓은 터가 있음.
  • 온달산성 : 고구려 온달장군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석성으로 둘레 682m. 사적 264호.
  • 망굴여울 : 온달장군의 패전 군사들이 넘어지고 자빠지며 굴러서 건넜다하여 망굴여울 또는 마구여울이라 함. 새터 앞 여울.
  • 송파서원터 : 松坡書院. 1703년(숙종 29)에 창건하여 미촌(美村) 윤선거를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9월 대원군의 사원 철폐 때 일부 헐렸다가 1871년(고종 8) 3월 전국의 사액서원 47곳만 남기고 철폐할 때 완전히 헐림.
  • 장군수 : 장수물. 온달성 안에 있었던 물로 온달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마시던 샘물.
  • 밤수동 : 1972년 수해로 전 가옥이 유실되므로 산으로 피난한 마을. 밤나무가 많아 밤수거리 또는 밤수마을이라 함. 하2리로 18호의 수해 주택이 있음.
  • 방터 : 芳垈. 傍垈. 온달성 뒤편 마을로 화전 정리로 이주. 방같이 아늑하다 하여 방터 또는 방대라 했으며, 꼭두방터·중간방터·아랫방터로 나눠짐. 온달성에서 신라군사와 싸우던 터.
  • 헛굴 : 일명 공주굴. 온달동굴에서 약 200m 아래 강 하류에 뻥 뚫린 굴. 예전 여름에 천렵하러 많이 갔음.
  • 억수목이 : 영춘 사람들이 비마루 쪽을 보면 소나기 올 때 뿌옇게 비가 억수로 많이 들어온다 해서 억수목이라 함. 휴석동에서 갈매기로 넘어가는 고개.

라이선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