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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

적성면 역동 우탁선생 호의 내력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7일 0시 0분 0초
조회
5,943
적성면 하리 일대에는 품달촌(品達村) 다시 말해서 큰 인물이 난다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인물중에 고려시대에 우탁 선생을 들수가 있습니다.
우탁 선생은 고려 원종(元宗) 4년(1263년)에 출생하여 24살 때인 1290년(충렬왕 16)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해가록에 선임되었는데 郡에 요괴한 신사(紳祠)가 있어 이름을 팔영(八鈴)이라 하는데 백성들이 현혹되는 것을 보고 묘사를 철폐하고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1308년(忠宣王 즉위)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충열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밀통하자 흰옷에 도끼를 들고 거적을 메고 대궐에 입궐하여 상소(上疏)하니 신하가 상소문을 펴들고 감히 읽지 못하니 우탁이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경(卿)은 그 죄를 아느냐?"하고 말하니 대신들이 어쩔줄 모르고 말문도 못열고 왕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있었다고 한다 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예안(지금의 안동부근)에 은거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았다.

그 후 충숙왕 때, 그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다시 불러 중용하고자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우탁 선생은 경사에 정통하고 역학(易學)에 깊으니 정주학(程朱學)이 처음 우리 나라에 들어왔으나 이것을 아는 사람이 없자 한달 동안 문을 닫고 연구하여 이를 해득하고 후진을 가르치니 성리학(性理學)이 비로소 행하게 되었다.

이 어려운 성리학을 해득하여 정리하게 되자 중국에 여러 학자들이 중국의 易이 이제는 東으로 가게 되었다하여 후에 사람들이 선생을 역동(易東)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제보자 : 적성면 하리 360번지 장진만
- 체보자 : 김 동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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