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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영춘면 남천리 도깨비 비석(주술비, 석부인단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3,781
영춘의 남천리는 우리 나라에 몇 군데 남지 않은 원시림이 있는 대어구 대산이 있으며, 그 입구 마을이 남천이다. 남천의 형극은 앞산 바위가 할미 바위로 이 바위는 손자의 손등을 잡고서 마을을 떠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을에 불이 자주 일어나고 마을 사람들이 병으로 아픈 사람이 많고 마을의 인재가 자주 일어나 무엇인가 음양오행설이 안맞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도깨비 소동이 일어났다.

밥을 해먹고 늦게 오는 가장이나 멀리 길 떠난 집안 식구를 주려고 놓아둔 밥을 다퍼서 뿌리고는 솟뚜껑을 소당안에 넣고 도깨비들이 두드리고 놀다가 닭이 울면은 떠나가니 자연 사람의 생활이 위축되고 마을에 살기를 꺼려하여 마고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잡고 떠나는 형극이 맞아떨어지게 되는 형상이다. 또 다른 집은 국수를 해먹고 남긴 것을 부엌에 두었더니 국수를 나무 울타리에 걸어 놓고는 서로 잡아당기면서 집 떠나간다고 밤새도록 떠들어대니 외딴집에 독가촌으로 살기는 상당히 힘든 생활이었다. 술을 마시고 이웃마을에 놀다 올 때면 꼭 도깨비를 만나 밤새도록 도랑과 가시밭으로 사람들을 끌고 다녀 기진맥진하게 하고 놀라게 하여 사람을 병들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혜와 힘을 모아 도깨비를 물리치기로 하고 놀다 올 때는 꼭 서너명씩 짝을 지어 오고 올때는 짚으로 횃불을 두서너개 만들어 돌리며 오곤 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대책은 아니고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집집마다 호롱불 대신 광솔불을 켜고 대문마다 엄나무 가시를 달아 도깨비의 범절을 막으려 했으나 도깨비의 패해를 보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차 이인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주민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하자 듣고만 있던 이인이 그것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처방을 내리면 시키는 데로 해보겠다고 하였다. 일부에서는 이인이 시킨 대로 했다가는 도깨비한태 더 혼난다고 뒤로 빠지는 사람도 있었으나 밑져 보아야 본전인데 한 번 해 보자고 한 것이 도깨비 비석의 건립이다.

도깨비에게 땅을 주고 비석 근처에서만 놀게 하는 석부인을 세우게 되었다. 전 주민이 나와서 정성스럽게 비를 세우고 도깨비 신은 이곳에만 있고 마을 주민을 괴롭히지는 말아 달라는 약속의 뜻으로 비를 세웠다. 이상하게도 비를 세운 후부터는 도깨비가 집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날이 궂은 날만 도깨비불만이 보일 뿐 나타나지 아니했다. 이 비석은 6.25 사변 전까지 있었는데 6.25사변에 국군과 인민군이 기관총 영점을 잡기 위한 조준용으로 이용하여 비석은 깨어지고 터만이 남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또다시 마을에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시멘트로 석부인단비를 세웠다.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 확장 마을 하천 정비에 돌담이 헐어져 나가고 시멘트 비석도 깨어졌다. 석부인단비석터에 마을 회관 겸 노인 회관이 생기자 그대로 옛도깨비터인데 비석은 세워 주어야 한다 하여 마을의 평온과 옛터를 지키고자 '92년 석부인단비를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세웠다.

- 소재지 : 영춘면 남천리(회관앞)
- 년 대 : 조선중기
- 제공자 : 영춘면 남천2리 김학봉(74세)
- 제보자 : 영춘면 윤수경 / 198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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