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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면

가곡면 양만티 내는 뱃기미(배가미, 가대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3,789
1884년 겨울과 1897년 봄 한국을 답사한 영국왕실 소속 이사벨라 버드비숍여사가 쓴 단양기행중 철저한 양반행세를 했던 가곡면 가대리의 이야기는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고, 지역의 텃새를 1970년대까지 하였던 것을 40대는 기억할 것이다.
그때 당시 이국인은 참으로 우습게 평가했고 양반을 좋지않게 평가했던 것 같다. 당시 마을의 규약, 팻물, 절초령(물베기)마을 대표자등을 마을어귀에 써서 공고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누구나가 알리고 싶은 일은 일정한 장소에 붙이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다. 현재의 마을게시판을 보고서 쓴 글 일것으로 추측된다.

아름다운 강변에 있는 "뱃기미"마을에는 큰 글씨로 쓰인 다음과 같은 팻말이 있었다. "만약 뱃기미를 지나는 양반의 하인이면 마을 어른들께 공손하게 행실을 똑바로 해야한다. 만약 행실이 좋지 않으면 매를 맞게 될 것이다. "나로 하여금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아주 신선하고 자주적인 주장이었다.

한국의 악담중에는 기득권 계급인 양반이나 귀족들에 대한 것이 아주 많다. 그들은 생업을 위해서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친척들에 의해 부양받는 것도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되지 않으며, 일부 아내가 바느질과 빨래로 남몰래 일하여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양반은 담뱃대조차 자기가 가져오지 않는다. 양반의 자제는 그들의 공부방에서 서당까지 그들의 책을 직접 들고 가지 않는다. 이 기생충이나 다를 바 없는 계급은 여행할 때 그가 소집할 수 있는 만큼의 많은 하인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관습적으로 요구된다.

그는 하인이 인도하는 말을 타며, 절대로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다. 그의 하인은 백성들을 윽박지르고 위협하여 닭과 달걀을 돈도 주지 않고 빼앗아 온다. 이것이 뱃기미 마을의 팻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백성들, 즉 권리가 없는 대중은 세금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고, 양반에 의해 핍박받고 급료없이 노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채로 인해 혹독한 부역을 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인이나 농민이 어느정도의 현금을 저축했다는 소문이 나거나 알려지면 양반이나 관료는 빌려준 돈을 찾는다.

실제로 그것은 과세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탈세 혐의로 감옥에 갇혀서 그 자신이나 자신의 친척이 요구하는 돈을 지불할 때까지 매일 아침 매질을 당한다. 혹은 사실상 석방된 후 돈이 준비될 때까지 조금씩 먹으며 양반의 집에 붙잡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부채의 명분으로 부역을 시키는 사람은 최고의 귀족이다. 그러나 빌려준 사람은 원금과 이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귀족들은 집이나 땅을 살 때 돈을 주지 않고 관리들도 그 지불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이다.

내가 나의 사공에게 급료를 지불했던 뱃기미에서는 어떤 양반의 하인이 급료없이 서울까지 기와를 가져 가려고 모든 배에 압력을 넣고 있었다. 김씨는 현금으로 급료를 받은 후, 강 아래로 몇 개의 대단찮은 것을 가지고 가는 것에 대해 내게 양해를 구했다.

일행이 말하기를 외국인을 태우고 있는 내 배는 부역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꼭 가곡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구한말 당시 이렇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양반을 기생충으로 평가했으니, 그때의 행정과 생활의 단면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편집자주 :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중에서

- 소재지 : 가곡면 가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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