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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면

단성면 소금무지산(두약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자
2007년 12월 26일 0시 0분 0초
조회
4,046

두악산, 남산, 소금무지산으로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충숙왕 5년(1319년)군의 업무를 시작하여 공민왕때는 합단의 난을 물리친 공로로 한때 단산부가 되었으며 1985년 단양군청이 이주하기까지 666년간 군청소재지로 있었다. 단양군의 진산으로서 품위를 다했다고 한다. 단양의 군수가 바뀔 것을 예언해 주었다고 한다.(산이 울었다고 함.)
단양은 옛부터 불이 자주 일어나 재산을 가진 자가 없었다. 한 해에도 몇 번씩 불이나 초가집으로 된 옹기종기한 마을이 모두 불탄 가래산 아래 마을을 재깐 모퉁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불의 재해가 많았던 군청 소재지다. 어느날 한분의 도사가 지나 가다가 불끄는 것을 보고서 “불이 날것은 당연지사야” 남은 불이나서 허둥대는데 웃기만하고 있다가 “아무리 불을꺼도 또 나게 되어 있어, 화기를 근본적으로 잡아야지 임시방편으로 물만 부어서 되나“ ”그럼 좋은 방법을 가르려 주십시오“ 하고 물으니 단양 고을의 지명은 모두 양으로 화기이고 양자의 뜨거운 빛을 밀어서 두악산의 불기둥으로 밀어대니 굴뚝 형상을 만드니 불이 자주나고 불이나면 아주 큰불이 되는지라 불의 맥을 끊어야하지! 그러나 너무 많이 끊으면 또 수해가 날 염려가 있으니 마을 가운데 호당 1명씩 나와 자기가 들어갈 만한 량의 연못을 전동민이 나와 파고 집식구 숫자 대로 물을 부어 놓으면 화기는 진정될 것이고 불꽃 형상인 두악산에 두 항아리를 묻고 하나에는 소금을 하나에는 단양천 물을 길러다 부으면 불은 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소금과 물이 조화를 이루게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고 하여 그후로는 두악산이 이라가 보다는 소금을 묻은산이라 하여 소금 무지산(염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두 개의 항아리를 묻고 연못을 판 후로는 불이나지 아니했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네들이 단양천이나 남한강에 목욕하고 물항아리와 소금 항아리를 채우고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상달에는 많은 여인들이 줄을 이어 시어머님과 며느리들의 행열이 그치지 아니했다 한다.

신단양 이주후 깨어지고 없어진 것을 단성 향토문화 연구회에서 3년째 음력보름을 전후하여 소금무지산 제를 지내고 있다.


- 소재지 : 단성면 북상,북하,상방,대잠리
- 년 대 : 조선초기
- 제공자 : 단성면 가산2리 장영식
- 제보자 : 단성면사무소 윤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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